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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취업이야기

프로그래머가 영국 회사에서 해고당하는 이유


전에 언급한적도 있었던 그 바스라는 동료가 해고 당했습니다. 여러가지로 실력이 모자라기는 했어도, 늦게까지 일하면서 고생을 많이 했기에 설마 이렇게 될줄은 예상도 못했습니다.


어제 점심에 앤디가 바스자리로 와서 별 말 없이 계속 서서 지켜보고 있었습니다. 저는 일하느라 바뻐서 흘깃 보다 말다 하고 있었는데, 바스가 주섬주섬 물건을 챙기기 시작했습니다.

물건 챙기는 동안 둘 사이에는 아무 대화도 없었습니다. 분명 분위기가 이상했는데, 주위에 있던 동료들은 전혀 관심 없다는듯 평소보다 더 조용히 일에만 집중하고 있었습니다.


한참 그러다가 앤디와 바스는 함께 나갔습니다. 그제서야 개러스한테 무슨일이냐고 입모양으로 물어봤더니, 개러스 역시 단순한 제스쳐로 대답했습니다. 목에 손가락을 긋는 모양으로요. 해고 됐다는 뜻이지요.


입사한지 5개월만에 나가게 된것인데, 추측해보건데 3개월의 프로베이션 기간동안 실력을 증명하지 못하여, 2개월 추가 프로베이션 기간을 받았으나 결국 실패한것으로 보입니다.


모든것에는 배울점이 있기에, 이일을 계기로 저는 많은 생각을 하게 됐습니다. 그리고 영국도 사람사는 세상이라 한국과 공통점이 많다는걸 새삼 깨닫게 되었습니다. 회사에서 정리당하는 이유는 100% 본인의 능력 부족이긴 하겠지만, 그외에 작용할 수 있는 요소들은 있다고 봅니다.


바스라는 친구는 잘하지는 못해도 꽤 열심히 하긴 했었는데, 프로베이션을 통과하지 못한 이유는 뭘까요. 옆팀에 작년에 들어온 중국인 여자는 일도 잘 못하고, 늦게왔다가 일찍 퇴근하고, 늘 수다떨러 다니고다가 일 딜레이 시키기 일수였으나 프로베이션 패스 했습니다. 그리고 몇달후 출산휴가 가서 지금 9개월째 회사에 안나오고 있는데요.



1. 본인과 안맞는 보스 및 동료를 만났다.


작년에 바스가 입사하고 몇주 후, 열심히 일하는 저를 보면서 웃으며 말하더군요. "너 진짜 열심히 일한다. 한국사람은 다 그렇게 열심히 일해? 우리 인도사람들인 쉬엄쉬엄 일하는데. 인생을 즐겨야지!" 


돈을 받았으니 열심히 일하는건 당연한건데, 저렇게 말하니 왠지 내가 너무 dedicated 한게 아닌가 생각이 들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지금 생각해보면 그 친구 너무 나태했던게 아닌가 싶습니다.


우리팀은 프로젝트 관리를 아주 철저하게 하는 매니져와, 거의 천재 수준의 시니어 컨설턴트 그리고 그에 상응하는 시니어 엔지니어를 주축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코드 한줄 한줄 까탈스럽게 굴어서 저도 리뷰 받는데 애를 많이 먹습니다. 그러니 저런 마음가짐으로는 기대치를 채울 수가 없을테고 당연히 좋은 평가를 받지 못했을것입니다.


2. 너무 어려운 업무를 하는 팀에 들어왔다


회사내에 거의 유일한 C++팀이고 프로젝트 대부분이 복잡하고 공부할것이 많은데, 그에 상응하는 노력을 보여주지 못한것 같습니다. 특히 C++의 abstraction및 generalization을 철저히 지키려고 하는 분위기이고 stl과 boost를 함게 사용하고 있으니 프로그래밍 자체로만으로도 경험 없이는 쉽지 않습니다. 그리고 방송 표준 규격등도 봐야하는데 그럴 여유가 없었을것 같습니다.


서당개 삼년이면 풍월을 읇는다고, 이제 저도 C++ 경력 10년정도 되니 코드만 봐도 무슨일을 하던 사람인지 얼핏 짐작이 가는데, 바스는 주로 스탠드얼론이나 클라이언트 사이드 어플리케이션을 개발하지 않았나 싶습니다. 서버쪽을 했더라도 아주 간단한 것을 한것으로 보여집니다. 일반 클라이언트측과 서버측 개발의 차이를 가볍게 생각하고, 그점을 간과하고 지원한게 아닌가 싶습니다.


3. 상사의 시간을 너무 많이 뺏었다.


바스가 들어온 후, 시니어 엔지니어 폴은 거의 바스 옆에 앉아있다 싶이 했습니다. 일을 시키면 조금 해보다가, 막히면 일단 폴을 불러서 물어보기 시작합니다. 한시간이고 두시간이고 옆에 두고 계속 물어봅니다. 그래서 폴은 자기 일에 지장이 생겨서 야근을 많이 했지요.


물어보는것 자체는 좋습니다. 하지만 최대한 물어보는자의 예의를 갖춰야 한다고 봅니다. 최소한 여러가지를 모아서 한번에 물어봐야 하고, 뭐뭐를 해봤고 어디어디를 찾아봤는데 못찾았다라는 핑계 아닌 핑계는 준비해야 하겠죠.


4. 분위기 파악을 잘 하지 못했다.


매일아침 프로젝트 진행사항 미팅을 하는데, 주로 딜레이 되는 부분은 바스의 파트였습니다. 나름 쉽다고 시킨건데도 말이지요. 딜레이 될수는 있는데 태도가 그리 좋지 않았습니다. 미안해하거나 열심히 하겠다는 뉘앙스를 줘야 하는데 오히려 일이 많아서 늦어졌다던가 리뷰어가 너무 과하게 해서 어쩔수없이 딜레이 되었다는 뉘앙스로 일관했던것으로 기억합니다. 언제까지 할수있냐고 물어봤을 때, 최대한 여유있게 말하는 것도 문제가 되었을듯 합니다. 일정에 엄청나게 민감한 프로젝트 매니져로써는 좋아할 수가 없는 팀원이지요.





우리나라에서나 영국에서나 미움받지 않는 방법은 똑같은것 같습니다. 한국에서 잘하던 사람은 영국 와서도 잘하고, 한국에서 죽쓰던 사람은 영국 와서도 고생하거나 항상 제자리걸음인 이유도 바로 그게 아닐까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