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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래식기타가 준 작고도 큰 변화

내가 처음 기타를 잡아본건 아마 초등학교도 들어가기 전인 까마득힌 옛날일거다. 아버지가 기타를 많이 치셨기에, 칠줄도 모로는 아버지 기타를 만지면서 장난쳤던것 같다. 기타를 넘어뜨려서 혼난적도 꽤 있었었고 말이다. 그때는 내가 왜 혼나야 하는지 이해하기 어려웠지만 지금은 내가 얼마나 잘못했는지 절실히 와닿는다. ^^;;;;


아버지가 통기타를 치며 올드팝을 부르는 소리는 아직도 아마 우리집 어딘가에 숨어있는 테이프에 녹음 되어 있을 것이다. 우리가 자란 후, 부모님은 가끔 짖궂으시게도 그 테이프를 마루에서 큰소리로 틀곤 하셨다. 아버지의 멋진 노래 소리와 누나와 내가 옆에서 종알대거나 따라부느는 소리를 듣고 있으니 신기함 반 민망함 반에 곧 마루를 도망쳐나와 내방에 숨곤 했다.


고1때부터 rock음악에 빠져서 기타도 조금 관심을 갖게 되었지만, 기타도 없었고, 기타보다는 노래에, 노래보다는 프로그래밍에 더 많이 빠져있었고, 그보다는 컴퓨터 게임에 더 많이 빠져 있었기에 시작도 해보지 못했었다.


대학시절 엠티에서 기타치는 복학생 형들. 그리고 가끔 친구네 놀러가면 있는 기타들. 다들 지들이 겁나 잘친다고 자랑 했었지만, 앞의 짧막한 몇소절 외에는 들어 본 적이 없던 녀석들의 연주. 그리고 아버지가 항상 하시던 말씀. 


"남자는 살아가면서 악기하나 정도는 다룰수 있어야 한다. 그래야 인생이 더 풍요로워 진다."


나도 기타가 치고 싶어졌다.


휴학하고 회사를 다니던 중, 자칭 통기타의 신으로 불리는 경영이사님에게 2주동안 배운 코드 몇개 그리고 희대의 명곡 "이루어 질수 없는 사랑". 하지만 그걸로 끝이었다. 그때 대치동에서 17만원에 구입한 아름다웠던 내 오봉 기타는, 7년간 방한구석에서 기타 가방속에 같혀 곰팡이와 싸워가며 햇볓을 그리워하며 고통스런 나날을 보내야 했다. 7년후 기타를 꺼냈을때, 목은 휘어있었고, 군데군데 곰팡이가 피었고 줄은 심각하게 녹슬어 있었다. 그게 벌써 3년쯤 전인것 같다..



올해 3월, 스페인 여행을 했다. 하지만 여행 일정에서 알함브라 궁전이 있는 그라나다는 제외 했다. 언젠가, 알함브라 궁전의 추억이라는 곡을 연주할 수 있을때, 그때 그곳에 가고 싶다는 작은 꿈이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건 말그대로 꿈에 가까웠다. 알함브라 궁전의 추억이라는 곡은 일반인 수준에서는 상당히 힘든 곡이라고 알려져 있다. 기본 연습곡을 충실히 밟아온 사람이 어느 정도 수준이 되었을 때 도전하는 곡이다. 나도 익히 알고 있었지만, 70세가 되기 전까지만 연주할 수 있다면 좋겠다는 마음으로 MP3파일으로나마 즐겨 듣곤 했다. 



(고음질은 요기 https://www.youtube.com/watch?v=5cx3WggvvZ8)


어느날, 무모하든 말든 일단 시작이라도 해보자는 생각이 들었다. 굳은 다짐을 하고, 알함브라 궁전을 연습하겠다는걸 기타를 잘 치는 형에게 이야기 했을때, 그 부정적인 반응이 아직도 기억이 난다.


"할꺼면 평생 할생각으로 해라. 나도 기타 좀 치지만 그건 못친다. 너는 기타 제대로 배워본적도 없으니까 아마 힘들꺼야. 다 외워서 친다고 해도, 남들이 듣기 거북하면 그건 치는게 아니지. 쉬운곡부터 차차 연습하지그래?"


하지만 그로부터 3달이 지난 지금 나는 알함브라 궁전의 추억을 연주할 수 있다. 훌륭하게는 아니더라도 꽤 들어줄 만한 수준이다. 트레몰로도 나름 균일하고 강약 조절도 조금 된다. 퇴근후 짬짬히 연습한걸 고려하면 스스로도 대견하다. 그 형도, 다른 지인들도 이 현상에 대해서 놀라워 하고 있지만 방법은 의외로 간단했다. 타브 악보를 보고 될때까지 손가락 짚어보고, 외우고 그리고 반복해서 연습하는 것이었다.


클래식 기타를 통해 평생 써먹을 수 있는 장기자랑을 하나 얻었다.

하지만 이보다 더 큰 소득은, 될때까지 계속하면 왠만한건 된다는 자신감이다. 몸으로 깨달은 이 교훈은 많은걸 바꾸는 힘이 있는것 같다. 수영 시작한지 3달밖에 안된 내가 얼마전에 자유영 2000m를 37분에 해낸것도 이 힘 덕분이라고 믿는다 :-)



스스로가 자신감이 부족하다고 느껴질때, 무모한 도전에 한번 뛰어들어 보시길!

  • 비밀댓글입니다

    • 안녕하세요 ^^; 저 동성고 나왔어요. 어떻게 아셨지..? ㅎㅎ
      카톨릭 학교 맞구요, 지금 돌이켜 보면 인성위주의 교육을 했던 것 같습니다. (당시에는 질풍노도의 시기라서 그냥 마냥 모든게 불만일뿐, 그런걸 잘 못느꼈지만요..^^)

      말씀하신 "리틀마닐라"는 뭔지 잘 모르겠습니다..
      이렇게 구경해주셔서 감사합니다. 혹시 블로그있으시면 알려주세요 저도 구경 가고 싶네요 ! :-)

  • jotal 2018.09.14 18:14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알함브라 궁전의 추억 검색하다 여기까지 들어왔네요. 댓글에 동성고 이야기가 있어 반가워 댓글 달고 갑니다. 예전에 그동네 산 적이 있어서 ^^ 리틀마닐라는 아마 동성고 앞에서 동남아 사람들이 장터여는거 말하는것 같네요.

    • 아... 잘 몰랐네요 그동네를 떠난지 오래 되어서. 이화동하고 연건동에 오래 살았어서 아직도 모든게 생생하네요. 작년에 한국 갔을때 부모님과 같이 놀러 갔었는데 너무 좋더라구요..